대체의사결정제도인 성년후견제도의 도입은 인권을 증진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권리의 보유 권한을 인정하되 행위권을 인정하지 않아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 등 정신적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해 현재 성년후견제도는 보충적,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지원의사결정제도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종국에는 후견제도와 대체의사결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하나로 모였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14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개최한 ‘지원의사결정제도 도입방안 토론회’에서는 지원의사결정 실천모형과 법제도 개선방안이 발표됐다.
장애인 자기결정권 위한 대체의사결정제도 대체방안 ‘지원의사결정제도’
발제를 맡은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동석 교수에 따르면 지원의사결정제도는 대체의사결정제도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로,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하더라도 행위권까지 인정해 모든 법적 역량을 인정하고 행위권을 지원하기 위한 노력을 강조하는 제도다.
행위권을 갖는다는 것은 행위를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지만 행위에 대한 통제는 장애인 당사자가 갖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원의사결정제도는 해외의 경우에도 시범사업 등 시작 단계에 있으며 그 형태 또한 ‘의사소통지원에 의한 정보제공 지원’, ‘사전 지시서’, ‘대리인 또는 지원인 계약에 따른 대리행위권 위임’, ‘지속적 대리권 위임’ 등으로 다양하다.
이번 지원의사결정제도 모형은 지원인 계약에 따른 대리행위권 위임을 중심으로 개발됐다. 즉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한 성인 장애인 당사자가 지원기관의 지원으로 의사결정 지원인과 사적 계약을 맺는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 의사결정 능력’ 역량평가 아닌 당사자 선택으로 이뤄져야
이동석 교수는 “지원의사결정제도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의사결정 능력에 대해서는 역량평가를 하지 않고 장애인 당사자의 선택에 의해 의사결정지원제도에 대한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결정 지원인은 전문가도 가능하겠지만, 장애인 의사결정 지원에 뜻이 있는 일반 성인뿐 아니라 장애인 당사 주변에 있는 가족, 친구, 동료 등도 가능하다. 다만 의사결적 지원인 자격을 위한 최소 10시간에서 최대 40시간이내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의사결정 지원 영역에 대해서는 자기관리에 관한 동의 제공과 거부 및 철회·사회서비스 신청 등 ‘자기관리 영역’, 치료·예방·입원 등 ‘건강관리 영역’, 개인 재정관리 및 정부 지원금 접근 등 ‘재정관리 영역’으로 규정했다. 다만 법률사무는 추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이동석 교수는 “의사결정 지원자가 신의원칙에 위반해 성실한 활동을 하지 않을 경우 고소가 가능해야 하며 불성실한 실천이 명백할 경우 이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지원자가 장애인의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행위했다고 해도 손해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지원자에 대한 책임전가는 없어야 한고 다만 지원자의 과실이라면 계약 종료 사유가 되고 배상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지원의사결정제도를 법제화하는 방안으로 민법 개정을 통해 지원의사결정의 근거 조항을 만들고 지원의사결정의 원칙을 표명하고 성년후견제도는 보충적,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더불어 ‘지원의사결정에 관한 법률’과 같은 개법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지원의사결정에 관한 법률안에’는 지원의사결정 및 장애인 당사자, 지원인의 정인의, 의사결정능력 부족 성인에 대한 기본원칙, 지원인의 자격, 지원의사결정 계약, 지원기관의 업무, 모니터링 등 내용이 담겼다.
정신적장애인 당사자 자기결정권 박탈이 익숙한 대한민국 현실
법무법인 디라이트 공익인권센터 김강원 부센터장은 “장애인은 보호라는 명목으로 의사결정권이 없는 것처럼 취급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며, “해외에서는 이에 대한 반성이 요구되고 있고 장애인이건 누구건 자기결정권이 그 존재에 대한 긍정으로 인식되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특히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우리나라에 2014년에 이어 2023년에도 후견제도를 지원의사결정제도로 전환할 것을 권고하면서, 주견제도와 대체의사결정제도를 폐지해 가는데 있어 진전이 부족하고 지원의사결정제도로 완전히 전환하기 위한 계획이 부족함에 깊은 우려를 밝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러한 권고와 우려의 말에도 왜 이렇게 정부와 시민사회는 지원의사결정에 대한 자각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가. 큰 원인은 지원의사결정이 난해하고 생소하기 때문이며 장애인에 대한 대체의사결정을 현실에서 의례해왔기에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마지막으로 “더 이상 장애인 당사자의 법적 권리를 박탈하지 않아야 하며 그동안 빼앗아왔던 의사결정권을 되돌려줘야 한다”면서 “법과 제도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사회로 녹아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사회로 녹아들기 위해서는 NGO들이 도전적으로 지원의사결정을 위한 실천에 뛰어들었던 해외 사례처럼 장애인단체 및 복지관 등 현장 실천가들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결정지원제도 도입, 장애인 자기결정권 ‘사회적 공감대’ 형성 중요
사단법인 온율 배광열 변호사는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 등 정신적장애인도 자신의 사무에 대해서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자기결정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널리 형성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전제되지 않는 의사결정지원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정신적장애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거나 또 하나의 권리를 제한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우려가 있다는 것.
배광열 변호사는 “우리나라도 다양한 의사결정지원제도가 있다. 먼저 대리형 의사결정지원제도가 10년째 운영 중이지만 거의 활용되고 있지 않으며, 2013년 시행 이후 성년후견제도 사건 총수는 3만 건이 넘는데 그중 임의후견은 26건에 불과하다”면서 “그 이유는 복잡한 절차, 고비용 등 다양한 문제가 지적되고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 공감대 부재”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는 의사결정지원제도인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또한 처음에 도입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소송 등 많은 사람들이 도전이 있었고 민간차원에서의 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운동도 오랜 기간 펼쳐진 결과가 연명의료결정법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만 4년 만에 200만 건 넘게 등록된 것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점 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의사결정지원제도 역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조금 더 도전적으로 현재 있는 제도부터 활용하려는 시도를 하자고 제안드리고 싶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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