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9일 장애인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2·3차 권고를 냄과 동시에 UN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작년 11월에 한국장애포럼에서 탈시설 가이드라인에 대한 설명회 및 토론회가 있었는데, 시설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설명을 들으며 탈시설을 이루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로부터 8개월 후 지난 7월 18일 국가인권위원회,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공동주최로 서울 온드림소사이어티 ONSO스퀘어에서 탈시설·탈원화 이행을 위한 유엔 탈시설 가이드라인 발표회를 개최했다. 멕시코 출신의 아말리아 가미오 장애인권리위원회 부의장이 동영상을 통해 탈시설 가이드라인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이 발표회를 시작했다.
아말리아 가미오 부의장은 후견제도 유지와 장애인 자신이 삶에 대한 결정권 부여가 없는 한 협약의 다른 권리 보장이 없음을 강조했다. 보호·돌봄을 통한 장애인 배제를 목격했고, 시설에 격리된 장애인의 높은 감영률과 사망률 확인을 계기로 장애인권리위원회는 3년 전 탈시설에 대한 실무그룹 조직을 고려, 이후 7개 지역에서의 협의 끝에 탈시설 가이드라인 초안을 완성했다. 그 후 장애인들과의 협의 끝에 이 가이드라인이 나오게 됐다며 가이드라인 내용을 설명한다.
가이드라인 1장에선 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에 대한 일반논평과 협약 14조의 내용을 탈시설 가이드라인이 보완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2장에선 시설은 장애인에 대한 폭력·차별의 한 형태라 국가는 모든 형태의 시설수용을 종식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함은 물론, 장애 아동 시설화의 심각한 영향과 신규 시설에 대한 시급한 모라토리움에 대해 강조한다.
3장에선 장애를 이유로 한 시설화와 기타 분리 관행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제공하고 아동을 위한 그룹홈 등 점점 더 많아지는 대략적인 시설 관련 기관 유형 목록이 나와 있다. 특정 시설적 특성 없애기론 충분치 않고, 장애인 주도 하의 탈시설 과정이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장애인의 법적 권리 존중에 중점을 둔다. 시설 소규모화, 병상 추가 등의 협약위반 관행을 자제할 것도 얘기한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양질의 개별화된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 구축이 국가의 의무이며, 장애인의 의사결정 존중을 통한 서비스 제공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협약 준수하는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에 투자하고 시설 유지·확장에 대한 추가 투자 중단, 시설화에 노출된 장애인에게 안전하고 접근 가능한 적정 가격의 주택 제공 등도 국가가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다음으로 성별과 연령에 민감한 접근 방식 채택 등 모든 탈시설 과정에서 교차적 접근법의 채택을 명시하며, 여성과 소녀, 아동, 노인, 장애인 등 개인의 정체성 형성 시 다양한 특성에 대한 민감성 보장을 촉구하는 것과 관련한 내용은 4장에서 나온다. 뒤이어 5장에선 독립적 생활과 지역사회 통합 권리 제한하고 침해하는 모든 관행을 수정, 폐지, 금지하고,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에 대한 효과적 구제 보장에 관한 국가의 의무를 명확히 한다.
아울러 국가는 법적 개혁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선 안 되고, 법적 능력에 대한 권리, 사법접근권, 평등과 비차별 등 협약에 부합하는 탈시설 전략의 이행을 위한 여러 영역에서의 입법 조치를 해야 하며,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 현황 정보 수집,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 매핑 및 새로운 지원 구조 확인과 노동력 평가·개발해야 한다는 점을 언급한다.
6장에선 지역사회 거주 장애인의 자기옹호, 적절한 생활 수준 위한 기금 등 다양한 지원 시스템·네트워크를 국가가 인정·촉진해야 할 필요성을 규정한다. 이어서 7장엔 합리적 편의시설 제공, 시설 거주 개인에 대한 일반적 형태의 공공서비스 접근 보장 계획, 충분한 계획을 보장하는 시설 퇴소 준비 등 모든 일반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보장을 국가에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다음 8장에선 긴급 상황에서의 고질적인 시설화 위험을 강조, 시설화를 우선시하는 차별적 관행 폐지와 생명권 보호를 위한 포괄적 비상계획 마련, 명확한 일정과 적절한 자원 등이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고, 긴급 상황 시 시설로의 장애인 유입을 막아야 한다는 게 핵심내용이다. 9장엔 시설 거주 장애인에 대한 공식적 사과, 금전·비금전적 보상, 시설화 정책 관련 피해 조사 위원회 설립 등 배상·회복 메커니즘 확립을 위한 포괄적 조치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10장에선 적절하고 윤리적으로 분리된 통계 연구, 행정 데이터 수집 등을 통해 탈시설 과정 계획·실행·모니터링·평가에 활용해야 하는 국가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며, 11장에선 협약 33조에 따라 설립된 독립적 감독 메커니즘 수립 등 탈시설 절차에서 효과적이고 독립적인 책임, 투명성 보장해야 하는 국가 의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지막으로 12장에선 탈시설과 관련해 국제협력 프로세스의 필요성, 시설 환경에 대한 투명한 투자 방지, 탈시설 구현·설계, 모니터링 과정에 장애인의 참여 필요성 설명하고, 기부자나 수혜자 등 장애의 의료적 모델 접근 방식과 같은 해로운 방식은 피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전체적인 탈시설 가이드라인 개요를 설명한 후 아말리아 부의장은 장애인이 계속 배제될 수는 없다며 탈시설을 이룩하기 위해 이젠 시간이 더 이상 없음을 피력하며, 발제를 마친다.
뒤이어 이 가이드라인이 한국 사회에 주는 함의에 대해 장애인권리위원회 김미연 위원이 간략하게 설명하는 자리가 있었다. 김미연 위원은 탈시설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국가가 모르기에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으며, 국가가 탈시설과 관련해 진정성, 실천 의지가 있는지는 예산 투여를 통해 확인한다고 말했다.
시설에 수용하는 국가는 장애인의 법적 행위 능력을 실질적으로 거부하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관행을 하는 거라, 제5조 ‘평등과 비차별’, 제12조 ‘법 앞의 동등한 인정’을 위반함은 물론, 사전 고지된 동의 없이 약물과 기타 개입에 노출되기에 제25조 건강 조항도 위반하는 거라고 김 위원은 꼬집었다. 그러면서 시설수용은 복지정책 아닌 감금이요, 탈시설의 최종 목적은 제17조 개인의 존엄성 보호에 있음을 힘주어 말하며 설명을 마쳤다.
장애인권리위원회의 두 위원 발제 후 토론에선 탈시설장애인 모임 IL클럽 홍정수 대표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그는 시설에서의 경험을 담담히 말했는데, 시설은 단체생활이고, 시설에선 학교에 다니기 어려웠으며, 졸업 후엔 보호작업장에서 박스 작업 수에 따라 용돈 버는 식으로 생활했다. 휠체어 탔으니 평생 죽을 때까지 시설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자립생활센터를 만나 당신도 자립할 수 있다는 말에 자립 결심을 하고, 시설에서 해보지 못했던 여행 등을 경험했으며, 현재 장애인 일자리에서 일하며 시설에 있는 동료들을 만나 상담하고 있단다. 한편, 자조모임을 하면 좋겠단 생각에 모임을 만들고, 이후 인원이 늘고 사람들과 같이 공연을 보기도 했단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대구지부 준비모임을 하며, 올해엔 2회 탈시설장애인 당사자대회를 하고 거기서 ‘알기 쉬운 UN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고 한다.
‘알기 쉬운 UN 탈시설 가이드라인’ 제작과 관련해선 한국장애포럼에서 장애인권리협약과 탈시설 가이드라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단다. 조항을 읽은 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조항 의미를 알았고, 이를 통해 알기 쉽게 가이드라인을 제작했지만, 조항이 너무 많으니 우리 정부가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쉬운 조항을 만들었단다.
마지막으로 홍 대표는 가장 인상 깊었던 UN 탈시설 가이드라인의 이야기를 언급하며 발표를 마쳤다. ▲시설은 선택지가 아님, ▲시설은 인권침해 장소라 거기서 사는 것이 차별이란 점, ▲시설이란 건물에서 나오는 것만 탈시설이 아님, ▲정부는 탈시설 장애인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 ▲정치인, 공무원 등이 이 가이드라인을 잘 숙지해야 함을 언급하며 말이다.
이어서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전근배 활동가가 시설 거주 경험 있는 장애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토론했는데, 시설 거주 시에, ▲시설에 있는 특수학교에 다니며 대학을 갈 수 없었음, ▲시설조사와 관련해 시설 측에 유리한 발언 하도록 당사자들이 압박받았음, ▲말 듣지 않으면 정신병원에 감금하거나 독방 감금하는 등 강제치료와 감금이 있었다고 당사자들은 말했단다.
탈시설 후엔 아파트에 있어도 이웃 주민과 왕래 없거나, 활동지원사 퇴근 후 코앞의 편의점도 갈 수 없는 점 등이 자신이 시설에 있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고 당사자들은 얘기했다. 이들은 장애인 당사자보다 운영자, 종사자 등의 말을 더욱 중시한다며, 개인예산제와 자기선택권이란 이름으로 활동지원서비스를 활용해 시설로 가는 문을 열고 있는 것 등을 걱정했단다. 시설 문을 닫고 대통령이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사과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는 당사자의 바램이 있었다는 말로 토론자는 토론을 마무리했다.
다음 토론은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의 이한결 전략기획본부장이 이어갔다. 그는 의사 말 잘 듣고, 약물 복용을 이행해야 하는 등 장애인에 대한 강제적 의료개입으로 UN 장애인권리협약을 위반하는 현실을 꼬집음은 물론, 정부가 지역사회 기반 인프라 부족 핑계로 탈원화를 이행하지 않기에, 탈원화 지원 및 자유·안전 제한 입법 조항 폐지 등을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개인의 선호가 반영되지 않았기에 어떤 서비스도 본인이 선택할 수 없게 된 정신장애 생태계를 비판했고, 약물 관리가 안 되는데 어떻게 지역사회 생활을 할 수 있느냐고 당사자에게 얘기하는 등 특정진단과 상태, 등록에 따른 차별적 대우가 있음도 지적했다. 아울러 일상생활에서 번창할 기회 보장을 협약에서 말하고 있음에도 심리사회적 장애인에겐 그런 기회조차 제공되기는커녕 강제치료가 선행되고 있음을 성토했다.
약물중단은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는 대한민국 사회의 관점도 비판한 그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약물로 인한 부작용과 일상생활 어려움을 겪는 것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도 꼬집었다. 그래서 자기결정권 존중, 당사자 중심 서비스 확충 등을 통한 지역사회 탈원화·자립생활 계획 등으로 정신건강 생태계 개혁 추진해야 한다며, 결국, 협약을 이행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마지막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 조사2과 조은영 조사관은 탈시설 자립주택, 기숙학교 등 지역사회 서비스 제공기관처럼 보이나, 실은 장애인의 의사결정권·선택권을 존중하지 않는 시설의 증가 현실에 대해 싸우고 있는 호주 사례를 소개했다. 호주 사례처럼 대한민국도 기숙학교 등 새로운 형태의 시설에 대한 탈시설에 관해 앞으로 다뤄야 한다고 했고, 또한 UN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반영, 장애인 당사자가 우리 사회의 탈시설 진행 정도를 평가해야 함을 강조했다.
토론이 끝난 후 각 조마다 당사자들이 함께 탈시설을 위한 외침과 마찬가지인 조각보 성명을 만들기 위해 토의했다. 30분 정도 토의한 끝에 각 조마다 성명을 만든 것을 가지고 발표한 후 탈시설·탈원화 이행을 위한 유엔 탈시설 가이드라인 발표회는 종료됐다.
이 발표회를 듣고, 알기 쉬운 탈시설 가이드라인 자료집을 보면서 좋았던 부분이 있었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탈시설 가이드라인 조문을 장애인 당사자들이 알기 쉽게 만든 건 물론, 조문 옆에 조문과 관련한 탈시설 당사자들의 경험을 수록해 놓은 것이 그것이었다. 당사자의 경험만큼 강력한 것은 없고, 경험만 읽어도 당사자들은 그 경험을 공감하며, 조문을 모르더라도, 어려운 말들로 쓰여진 탈시설 가이드라인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각보 성명을 발표할 땐, “발달장애인이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시설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을 더 이상 시설에 보내지 말아라. 자기결정권을 박탈하지 말아라. 발달장애인도 인간으로 대우받고 싶다.”는 부분과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친구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라”고 발표한 부분이 인상 깊으면서 공감이 많이 갔다.
언어로 말하기 어려운 장애인의 진정한 선호와 의사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시설수용해야 한다는 논리가 팽배한 게 현실이다. 언어 외의 그림문자, 몸짓 등 대체의사소통수단을 의사소통수단으로 인정하며, 장애인의 의사와 선호를 존중하는 사회라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게 될 터이니. 하지만 우리 사회는 대체의사소통수단에 대해 예산도 적고, 관심도 거의 없다,
또한, 탈시설한 장애인들 가운데 지적장애나 자폐 특성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지역사회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특성이 있는 사람들을 보고 위험한 사람이라든지, 영원한 어린아이 등의 낙인을 씌우면서 이들을 배제하기 일쑤다. 그리고선 이들에겐 사회성 훈련, 언어치료 등의 이름으로 비장애 중심의 사회에 적응하라는 압력이자 일종의 폭력을 가한다.
물론 이들도 나도 노력하겠지만 지적장애, 자폐 특성 등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노력 없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절대로 동등한 친구가 될 수 없다. 친구 사귀는 걸 노력하라고 얘기하는 당신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려고 노력했는지 정말로 묻고 싶다. 우리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란 말을 수도 없이 하는 건 솔직히 폭력으로 느껴진다. 그러기에 저런 조각보 성명이 현실이 되려면 우리 사회가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서 벗어나야 가능할 테지.
탈시설 당사자들이 UN에서 만든 가이드라인을 공부하며 가이드라인의 뜻을 점점 이해·자각하고, 거기서 자신들의 경험을 가미해, 알기 쉬운 자료를 만드는 건 물론 강력한 뜻이 담긴 조각보 성명을 만들고, 시설은 선택지가 아니라 인권침해의 장소임을 토론과정을 통해 밝히는 것까지 보니, 우리 사회의 한 줄기 희망을 이들에게서 보는 것 같아 고무적인 느낌이 든다.
그런데 당사자들이 시설은 선택지라고 여기는 정부의 태도를 걱정하는 모습에서 솔직히 이 정부에 답답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시설입소 과정이 반강제적이고, 국가와 지자체가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를 만들지 않은 걸 생각하면 국가·지자체의 잘못임에도, 지역사회에 충분한 서비스를 구축하지 못함을 핑계로 탈시설에 제동을 걸려는 정부의 태도에 가소롭기 그지없다.
김미연 위원이 19조 관련 42조 (b)항 권고와 관련해, 장애인권리위원회가 정부의 즉각적 탈시설 권고 이행을 바라는 의도로 권고했지만, 정부는 탈시설을 점진적으로 이행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발표했던 걸 들었을 땐 시설수용을 심각한 인권침해로 생각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 그런 태도를 부추기는 시설세력과 이에 찬동하는 부모들의 입장이 떠올라, 답답했다.
(b) 여전히 거주시설 환경에 머무르고 있는 성인 및 아동, 장애인의 탈시설화 추진을 위한 탈시설 전략 이행을 강화하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생활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도모하는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의 가용성을 높일 것.
더군다나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대한민국 정부에 내린 2·3차 권고와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쉬운 말로 바꾸기까지 했지만, 장애인권리협약을 담당하는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는 가이드라인 원문을 번역하지 않았다. 2·3차 권고를 번역하긴 했지만, 권고사항에 있는 오류를 수정하지 않아서 장애인권리위원회에 수정 요구하고, 권고 번역문을 공지하지 않은 상태란다.
하긴 정부가 탈시설에 관련해 시설은 선택이요, 탈시설을 하려는 거에 제동을 걸려는 입장이니 가이드라인 번역을 하지 않는 거란 생각 들지만, 설령 번역하더라도 탈시설 왜곡하는 방향으로 번역할 것이 예상되니 솔직히 답답함을 느낀다. 시설수용은 인권침해란 인식이 아직도 없는 정부가 이제부턴 그런 인식 생길 수 있도록 탈시설 당사자들의 당당한 요구는 물론 이들과 자폐성 장애인, 정신장애인 및 관련 단체와의 연대가 더욱 강화되어야 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장애인거주시설 폐쇄라는 문제에 가려져 우리가 놓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시설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조은영 조사관의 말도 결코 놓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장애인 탈시설 자립주택 같은 것인데, 이 주택의 운영주체가 장애인시설인 경우가 있고, 이 주택의 입주규칙에는 몇 시에 일어나고 몇 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규칙이 있기에, 시설 특징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장애인 학교에 있는 기숙학교도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긴 마찬가지다.
올해 윤석열 정부에선 개인예산제의 두 가지 모델을 적용하고 내년 시범사업을 추진하며, 2026년 개인예산제를 시행한다고 한다. 두 적용모델 중 하나는 장애인활동지원 예산 중 일부(10% 내)를 떼내 긴급돌봄 등의 공공서비스나 주택 개조 등의 민간서비스에 쓰도록 하는 모델이다. 다른 하나는 장애인활동지원 예산 일부(20% 내)를 떼내 간호사·언어치료사·물리치료사 등의 인력으로부터 서비스를 받는 모델이다.
그런데 장애인활동지원 예산의 10%가 예를 들어 탈시설 지원주택과 관련해 쓰이는 경우 주택 운영주체가 장애인거주시설이고, 장애인의 의지와 선호를 반영하지 않는 서비스를 한다면 이는 장애인 욕구와 의지 등을 중시하는 개인예산제의 취지에 어긋남은 물론이다. 더군다나 장애인활동지원 급여 결정에 쓰이는 서비스지원 종합조사표는 기능제한과 관련된 문항이 상당히 많기에 장애의 인권적 모델과는 거리가 먼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거주시설과 관련된 수많은 보도에 가려 실상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시설인 장애인 탈시설 자립주택이나 기숙학교 등에도 관심을 갖는 게 필요하다. 그런 시설에서 시설화 요소는 없는지 검토하고, 이런 요소를 없애고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로 자리 잡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의하는 것이 탈시설은 물론 장애인의 진정한 욕구를 반영하는 개인예산제 시행을 위한 앞으로의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라 본다.
그리고 탈시설 장애인 등 장애인의 진정한 참여 속에 대한민국의 탈시설이 진행되는 정도를 장애 당사자가 평가하도록 하는 것도 과제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 탈시설 장애인 등의 의견을 존중하고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정식통로를 국가와 지자체에서 마련할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한다면 장애인권리위원회 권고 이행 조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아쉬운 지점도 있다. 장애인으로 등록되지 않았지만, 장애 특성이 있고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기반한 지역사회 서비스가 충분치 않아 시설에 입소할 여지 있는 미등록 장애인들이 생길 수 있다. 이들이 탈시설을 한다 해도 미등록일 경우 인권보장 일환이 되는 서비스 받지 못하는 등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미등록 장애인의 탈시설에 관련한 논의가 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
더군다나 시설에서 일하는 장애 미등록 사회복무요원의 경우엔 본인의 의사에 반해 징집됨은 물론 그곳에서 근로하면서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기에 노동력 착취도 경험한다, 그래서 탈시설할 경우엔 미등록 사회복무요원 폐지가 되어야 하고, 이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것 또한 없어 아쉬웠다.
이외에도 탈시설할 경우 시설에서 일했던 직원들이 고용 승계를 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인권침해를 가한 시설 직원 등은 고용 승계에서 제외되고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건 물론이지만 말이다.
‘알기 쉬운 UN 탈시설 가이드라인 발표회’나 마찬가지였던 ‘탈시설·탈원화 이행을 위한 유엔 탈시설 가이드라인 발표회’를 통해 이렇게 아쉬우면서도 답답한 감정을 느끼게 됨은 물론 과제도 보게 된 반면 당사자의 발표 속에서 고무적인 느낌도 들었다. 이렇게 발표회는 나에겐 여러 감정을 느끼게 된 자리였다.
대한민국 정부에 내려진 탈시설 권고를 이행하기 위해 10년이란 시간은 긴 시간만은 아니다. 권고를 10년 안에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는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대해 훈련 수준으로 배우며 그 모델에 기반한 정책, 법, 제도 등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말리아 부의장의 말대로 진정한 탈시설로 탈시설 장애인 등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이룩해가는 과정을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정말 시간이 없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