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정유정 사건을 분석하는 과정에 있어 자폐성 장애를 범죄와 연관시키려는 시도, 그리고 조현병 성격장애의 옛 표현인 ‘자폐적 성향’이 그대로 사용된 점들로 인해 자폐인과 정신장애인을 혐오할 여지를 만들었다는 점에 자폐성 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은 분노했고 이에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SBS와 제작진 측은 먼저 문제를 제기한 부모연대 측에 사과했지, 실제로 자폐성 장애인과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직접 사과한 건 아니었다. 이런 걸 보면 당사자 부모 뜻을 존중하지만, 과연 당사자에겐 사과할 마음이 있는 것인지, 당사자의 뜻을 진정 존중하는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이런 상황이면 장애 당사자에겐 혐오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무의식중에 SBS와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생기지 않겠는가? 이러면 이번 정유정 관련 사태가 앞으로 발생하지 말란 법이 없고, 대중들에겐 자폐성 장애와 정신장애는 위험한 장애란 인식이 계속 들게 될 거다. 장애 치료 논리 확산은 물론, 자폐인과 정신장애인에겐 자신의 장애 특성을 숨기는 마스킹이 심해질 게 우려된다.
2년 전에도 ‘국민의 힘’ 김기현 의원은 상대방 정치세력을 폐쇄적이란 의미의 ‘자폐적’이란 말로 공격해 자폐성 장애인을 비하·혐오했다. ‘정신장애인은 위험한 사람이다’란 프레임은 여전해 계속 정신장애인을 혐오하는 발언, 보도 등은 아직도 만연한데, 이번엔 ‘그것이 알고 싶다’ 정유정 사건까지 터지고 당사자에게 직접 사과하는 건 여전히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자폐성 장애인, 정신장애인의 뜻을 진정으로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들은 정책·사회참여에서 배제되고 이들의 의사가 반영될 공식적 통로도 마련돼 있지 않다. 이런 식으로 장애인을 배제하는 게 규범처럼 되고, 장애를 손상으로 바라보며 치료하고자 하고, 장애인은 권리를 가진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건 장애의 의료적 모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보이는 특징이며 이는 장애인권리협약 일반논평에도 언급된 부분이다.
더군다나 장애인식개선교육에선 자폐성 장애를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로 눈 맞추기를 피하거나 동일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특성을 보임’으로 정의하며, 이 장애의 특성으로 상호작용 결함, 한 가지에 집착, 특정 행동 반복 등을 든다.
이런 식의 교육은 자폐성 장애인의 어려움을 사회적 장벽과의 상호작용이 아닌 순전 개인의 문제로 왜곡하는 거다. 그런 가운데 자폐성 장애에 대한 존중과 인식 제고는 생길 수 없다. 이것도 역시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니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따른 장애 수용교육 개발 또는 장애인권리협약 정신·내용을 반영한 장애인식개선교육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거다.
한편에서는 이번 정유정 사태를 보며, 부모집단은 정치적 힘이 세니까 그거에 굴복해 사과하는 행위를 보였지만, 우리 당사자 집단은 힘이 약하니까,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만만히 봤나 싶은 느낌이 들 정도로 굴욕감을 지울 수 없다. 사실 자폐성 장애인 자조모임이나 당사자 단체 수는 미미한 수준이고, 단체나 모임의 회원 수도 적기는 하다.
실제로 자폐성 장애인 자조모임 회원을 늘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자조모임 회원에 가입한 후 부모님이 그 모임에 가지 말라는 이유 등으로 회원 탈퇴한 자폐성 장애인도 몇 명 보았다. 이런 걸 통해 자신의 의지보다는 부모 결정에 의지하는 자폐성 장애인이 적지 않다는 느낌까지 새삼스러우나 들게 된다.
장애를 치료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사회에 장애인과 그 가족의 욕구에 기반치 않은 가족지원체계 등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 사회를 경험하는 부모 생각엔 자녀의 장애 치료를 최우선이라 여길 거다. 이런 사회에선, 자폐성 장애 등 장애가 있는 자녀 보호란 명목하에 자녀의 의지와 선호를 무시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은 것도, 이상한 건 아닐 터이다.
그러니 자폐성 장애 등 장애가 있는 자녀가 자조모임에 회원으로 가입했지만, 이를 안 부모가 자조모임이 별로 좋지 않은 곳이란 등의 생각에 자녀 보호란 생각을 가지고 모임에서 탈퇴하라고 말하는 심정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물론 자녀의 뜻을 존중하는 부모님들도 계실 터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손상을 인권을 부정하는 합법적 근거로 인정하지 않고, 장애를 다양성으로 여기며, 장애인의 욕구, 선호는 물론 장애인의 참여를 중시하는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근거하는 사회에서 장애인과 그 부모가 살았다면, 부모는 장애인의 의지와 선호 등을 존중했을 거다. 어떻게 보면 부모들도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 사회가 낳은 피해자란 생각마저 든다.
이외에도 자폐성 장애인 자조모임 내에 리더십과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가 부족하다 보니 모임이나 단체에서 탈퇴하는(탈퇴하려는) 회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자조모임이나 단체 구성원들의 리더십 함양과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 형성을 통해 자폐성 장애인 단체나 모임의 회원 수 증가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지만 말이다.
이와 관련해 장애 당사자의 욕구와 의견을 최대한 충분히 반영하고 존중해 국가와 지자체 차원에서 자폐성 장애인 등의 장애인 자조모임이나 단체 육성·확대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것도, 장애의 인권적 모델을 적용하는 한 일환이라고 보며, 그러면 자폐성 장애인 목소리는 더욱 강력해질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될 거다. 이와 더불어 이들 단체와 모임들이 다른 단체들과의 연대를 통해 더욱 강력한 자폐인의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발달장애인법 제11조에선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권익 보호와 사회참여를 위해 자조단체를 구성할 수 있고, 국가와 지자체에서 예산의 범위하에 자조활동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할 수 있다고 나와 있는데, 장애인의 욕구와 선호, 의지에 따라 경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문구를 바꾸고 실제로 그렇게 지원하도록 제도가 수립돼 뒷받침돼야 한다.
결국,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서 인권적 모델로의 장애 패러다임 변화를 거치는 노력을 해야만 자폐성 장애인, 정신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될 거다. 그렇게 되도록 작년에 나온 2·3차 장애인권리위원회 권고안을 국가정책에 충분히 반영하는 노력을 하길 바란다.
그렇지 않는 한, 이번 정유정 사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제2, 제3의 사태로 다시 재발될 것이다. 장애 패러다임의 변화 없인 자폐성 장애인 등 정신적 장애인 혐오·차별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새삼스럽지만 내가 얻은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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