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 소녀와의 피아노 레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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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8-30 16:49 조회71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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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첫 무대 듀엣 준비, 멘티·멘토 함께 성장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08-30 09:08:43
▲ 서울시청에서 성과공유회를 마치고 수지 멘티와 함께. ⓒ강대유
서울시 주최로 장애 청년들을 대상으로 예술을 교육하는 기회를 갖게 된 적이 있다. 장애 청년들 각자가 원하는 예술교육을 선택하여 멘토와 매칭되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20대 초반의 지적장애 여성분의 멘토로 일하게 되었고 10개월가량의 예술교육을 함께 했다. 예술교육으로 누군가를 멘토 할 수 있다는 프로젝트의 목적성이 꽤 마음에 들었다.
멘티와 첫 만남이었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멘티는 나의 질문에도 시큰둥하며 눈도 마주치지 않았었다.
"내가 싫은가? 내가 남자 멘토라서 부담스럽나?"
나중에 들어보니 첫 만남에 부끄러웠었다고 고백했다.
피아노 교육이 가져다준 작은 변화들
피아노를 배우는 일은 멘티의 사소한 것들에 있어서 변화를 일구어내게 했다. 매주 한 번씩 있는 피아노 수업을 위해 그 시간을 비워놨어야 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키기 위해 좀 더 분주한 삶을 살게 되었다. 피곤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레슨실로 와야 했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2+1 커피를 사 오는 것도 피아노 수업을 오기 전에 거치는 과정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위한 피나는 인내와 연습이라는 과정 역시 이겨내야 했다.
연습이라는 것은 '당기는 날'만 하는 막걸리와 파전 같은 것이 아니다. 수도승이 엄청난 시간 동안 도를 닦듯, 하루도 빠짐없이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예술교육사업이 그렇듯, 사업을 종료하기 전 자신이 선택한 예술 교육으로 성과 공유회를 해야 했다.
무대에서의 연주를 위한 연습과정은 어쩌면 꽤나 무거운 책임으로 다가왔었을 것이다.
음악으로 책임감을 배우다
멘티의 활동보조를 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으로sms 이렇게 피아노를 오랫동안 배우게 된 것을 '기적'이 라고 표현하셨다. '기적'이라는 단어가 실감 나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동안 멘티의 행적을 들어보니 그럴 만도 했다.
바둑, 볼링, 수영, 에어로빅 등 멘티는 안 해본 게 없었다. 공통적인 게 있다면 이러한 배움이 오래가지 못하고 3개월까지만 유효했다는 것이다.
멘티의 활동보조 선생님이 '기적'이란 단어를 사용한 건 적절했다. 10개월 동안 피아노를 배웠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멘티는 인생의 의미 있는 경험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의미 있는 첫 무대에서의 연주가 고민이었다.
인생의 첫 무대인데 동요나 쉬운 곡을 뚱땅거리기에는 아쉬움이 맴돌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피아노 듀엣(Piano duet)이었다.
스승과 제자가 나란히 앉아 근사하게 피아노를 두드리는 것이 좀 더 큰 의미가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피아노 듀엣은 서로가 칼군무처럼 호흡을 맞춰야 하는 쉽지 않은 장르이다. 연주곡명은 '슈베르트 즉흥곡', 피아노 듀엣으로 편곡된 곡이다.
이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의 미모를 하루도 빠짐없이 가꾸듯 매일매일 연습해야 했다. 하지만 집에 피아노가 없어서 피아노를 공수하는 일부터 해야 했다. 다행히 복지관의 도움으로 작은 건반 하나를 구할 수 있었다.
멘토의 역할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멘티는 한 번도 피아노 연습을 하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동기부여도 필요했다.
'가느다란 속눈썹을 붙이고 예쁜 드레스를 입고 가장 아름답게 연주합시다.'라는 제안도 삼세번밖에 먹히질 않았다. 그래서 가스 검침하는 검침원처럼 매일매일 연락하며 연습과정을 체크해야 했다. 내용인즉슨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로 시작하여 연습은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연습 영상을 찍어 보내도록 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최근에 겪고 있는 컨디션도 연습과 연주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올림픽 선수들의 멘탈을 케어해주는 코치처럼, 최근에 힘든 일은 없는지 심적으로 걱정거리가 무엇인지 만날 때마다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함께 준비하는 과정을 거치며 진정한 멘토가 되어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멘티만큼 함께 성장하는 멘토
음악 멘토로서 10개월의 여정 동안 깨달았던 것은 내가 멘티에게 가르쳐 준 게 비단 음악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멘토'라는 수식어답게 나는 멘티가 세상을 알고 경험하도록 그의 인생 한 부분을 나의 역할로 채워줄 수 있었다.
음악을 통해 인간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고 유지하는지 알려주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책임은 짊어져야 함을 알려주었다.
나 역시 멘티에게 배운 점이 있다. 상대방의 특성과 성향은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흡수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지적장애인이라고 하면 지능지수가 낮기 때문에 아이처럼 대하기가 쉽다. 하지만 그런 특성도 그 사람의 개성이기에 난 자연스럽게 흡수되길 바랐다. 가르쳤던 것을 기억 못 해도 다그칠 일이 아니었다. 피아노를 연습하도록 동기를 갖게 하는 것이 목적이 되도록 했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멘티가 10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버텼을는지 모르겠다.
한 가지 아쉬웠던 나의 실수도 있었다. 난 카페라테를 먹지 않는데 커피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레슨 때마다 2+1의 카페라테를 사 오던 멘티에게 '나는 카페라테를 먹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10개월 동안 자신의 용돈을 털어 카페라테를 사다 준 멘티에게 차마 '난 카페라테 안 좋아하니깐 커피 사 올 거면 아메리카노로 사다 줄 수 있겠니?'라고 솔직한 돌직구를 날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의 솔직함에 상처받지는 않을까 하는 나름 배려가 담긴 행동이었다.
하지만 좋은 말만 약이 되는 게 아니라 때로는 솔직하고 듣기 불편한 말도 약이 되는 법. 누구든 나의 호의가 상대방에게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멘티에게 가르쳤다면 성장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1월에 있었던 멘티의 첫 연주회를 잊지 못한다. 자신의 미소처럼 어여쁜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는 멘티의 표정은 그 어떤 예술가보다 더 행복한 표정이었다. 10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 멘티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의미 있게 축적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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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강대유 (piano-yo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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