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커' 통해 보는 정신질환과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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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11-19 17:56 조회66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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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 통해 보는 정신질환과 장애
아서 같은 정신질환자는 잠재적 범죄자인가? 지난 10월 한 달 동안의 최고 흥행작을 꼽으라면 단연 토드 필립스(Todd Philips) 감독의 영화 <조커(Joker)>일 것이다.
영화 <조커>에서 그려진 조커는 지금까지의 배트맨 시리즈에서 그려진 조커와는 달랐다. 악역으로서의 행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왜 악역이 되었는지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영화 자체가 가진 폭력성, 선정성으로 인한 모방의 위험 등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이 글에서는 주인공 아서 플렉(Arthur Fleck)에 주목하고자 한다.
두 차례에 걸쳐 영화 <조커>에서 그려진 정신질환과 장애를 기반으로 우리 사회가 그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를 풀고, 어떻게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글은 영화 <조커>를 다루기 때문에 영화 내용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 영화 내용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졌지만, 이 글에서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내용을 일반화하여 다룬다.
정신질환의 가장 나쁜 점은 남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미디언을 꿈꾸는 주인공 아서는 광대 분장을 한 채 일용직 노동을 하며 근근이 현실을 살아간다. 아서는 정신질환이 있어 7가지의 약을 복용 중이고, 정기적으로 사회복지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뇌신경의 손상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사회복지사는 증상 완화 방법의 하나로 꾸준히 일기를 쓰라고 권하는데, 아서의 일기장에 적힌 문장은 다음과 같다.
“정신질환의 가장 나쁜 점은, 남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 한다는 것이다.(The worst part of having a mental illness is people expect you to behave as if you don’t.)”
정신질환(mental illness)과 정신장애(mental disorder 또는 disability)는 혼용되는 경우가 많으나 사실은 구별되는 개념이다.
정신질환의 정의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데, 널리 이용되는 기준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사인분류(ICD) 또는 미국정신의학협회(ASA)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이 있다.
우리나라는 정신보건법에 의해 정신질환을 규정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조현병, 우울증 등을 정신질환으로 본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에서는 이러한 정신질환 중 특정 질환에 대해 1년 이상 지속적인 치료를 받았음에도 나아지지 않는 경우 정신장애인으로 인정한다.
영화는 아서가 정신질환자인지, 정신장애인인지 명확히 말해주지는 않지만, 정신질환이 아서의 삶을 녹록치 않게 만들었음은 확실히 보여준다. 영화는 아서의 만성적 우울과 망상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조커가 범죄자가 된 것은 정신질환 때문일까?
아서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곳인 고담시는 상당히 어둡고 더러운 곳으로 그려진다. 환경미화원들의 파업으로 인해 도처에 쓰레기가 널려 있고, 들쥐들이 들끓는다.
비행청소년들은 레코드샵 앞에서 홍보 판넬을 들고 광대춤을 추는 아서로부터 판넬을 빼앗고 묻지마 폭행을 한다. 멍든 몸을 이끌고 출근한 다음 날, 아서는 직장(일종의 광대 대행업체다)동료인 랜달로부터 호신용으로 쓰라며 권총을 하나 받는다. 받아 든 총을 몸에 지니고 있던 아서는 소아 병동의 어린이 환자들 앞에서 광대 공연을 하다 권총을 떨어뜨린다.
아서는 즉시 사무소에서 해고를 당하고, 귀갓길 지하철에 탄 아서는 젊은 남성들 앞에서 웃음을 참지 못해 또 폭행을 당한다. 그런 도중 우발적으로 품에서 권총을 꺼내 남성들을 향해 쏘고, 아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장정 3명을 살해한 살인범이 되고 만다.
영화에서 아서는 첫 살인을 저지른 후 모종의 자유로움을 느끼며 공중화장실에 숨어들어가 춤을 춘다. ‘악의 탄생’을 그린 장면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많은 이들은 의문을 제기했을 것 같다.
‘아서 같은 정신질환자는 잠재적 범죄자인가?’ 과거에 비해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등의 뉴스 보도가 잦아졌지만, 이는 단순히 정신질환자의 잠재적 위험성이 증가해서라기보다는 술이나 다른 이유로 인한 살인이 상대적으로 뉴스의 소재로 덜 사용되기 때문인 것도 있다.
즉, 조현병 환자의 살인에 지나치게 많은 (부정적)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조현병 환자 수 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적시에, 적절한 치료로 관리할 수 있다. 어려운 상황은 필요한 약물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사회 시스템 내에서 적절히 관리되지 못하면 생긴다. 아서의 경우 고담시가 복지 예산을 축소하면서 사회복지사와의 상담이 불가능해졌다.
사회복지사와의 상담 후에야 약 처방이 가능했기 때문에 당연히 약도 끊겼다. 영화에 표현된 바에 따르면, 상담과 약이 끊긴 이후 아서의 망상과 우울 등은 더 심각해졌다. 이처럼 필요한 개입을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상담도, 약도 끊겨버린 아서는 우발적 범죄자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행법상 정신질환자가 정신장애인으로 인정을 받기까지 걸리는 1년이라는 시간은 상당히 긴 시간이다. 질병의 특성상 감기처럼 단기간에 증상이 호전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다 보니 오랜 기간 관여할 필요가 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정신질환을 앓는 이의 삶은 점점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삶이란 개인과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상담과 약 복용 등을 개인의 노력이라고 한다면, 그를 지지해줄 수 있는 환경도 있어야 한다.
정신질환자의 일상생활 영위는 단순히 개인이 약을 복용하고, 하지 않고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지만, 실은 그 생활이 이루어지는 환경으로부터 받는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상담이나 약 등 직접적인 치료도 중요하지만, 긴 시간 동안 그들을 품는 사회 시스템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후속편에서는 ‘고담시가 복지예산을 줄이지 않았다면 조커는 조커가 되지 않았을까?’ 등의 질문을 가지고, 우리 사회가 정신장애인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보겠다.
※ 이글은 인천전략이행 기금 운영사무국을 맡고 있는 한국장애인개발원 대외협력부 윤주영 대리가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인천전략’은 아‧태지역에 거주하는 6억 9천만 장애인의 권익향상을 위한 제3차 아태장애인 10년(2013~2022)의 행동목표로, 우리나라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은 인천전략사무국으로서 국제기구협력사업, 개도국 장애인 지원 사업, 연수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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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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