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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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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12-09 09:43 조회6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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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허와 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는 프랑스어라고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이다. 초기 로마 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라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과거 로마제국 귀족들의 불문율이었다. 로마제국의 귀족들은 자신들이 노예와 다른 점은 단순히 신분이 다르다는 게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로마의 귀족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공헌 등에서 곧잘 사용되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부와 명성과 권력이 있다면 자식은 군대도 안 보내는 등 슬그머니 무임승차를 하려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어렸을 때 불을 때서 밥을 하고 방을 데웠다. 겨울이 오면 가장 큰 일이 김장을 하고 장작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작은 부잣집에서나 가능했고, 가난한 집에서는 장작더미는 엄두도 못 내고, 겨울 동안에 쓸 볏단이나 풀단(가을에 벤 억새 등)을 사서 재어두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시대부터 갈탄이 많았다고 하는데, 무연탄을 조금만 가공하면 불땀이 좋고 값도 싼 연탄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탄공장은 대한제국 때 일본인이 평양에 세운 것인데 일제 강점기와 광복을 넘기면서 서서히 성장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임산 연료 사용에 젖어왔기에 대부분의 사람은 여전히 불을 때서 밥을 하고 방을 데웠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나무를 다 베어가서 민둥산이 많았다. 6·25 이후 국가시책인 산림녹화에 따른 임산 연료 사용의 억제정책에 따라 무연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연탄에 구멍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화력을 키우기 위해 하나씩 구멍을 뚫게 됐고 구멍수에 따라 구공탄, 십구공탄, 이십이공탄, 삼십이공탄 등의 이름을 붙였다. 초창기에 나온 구공탄이 연탄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었으나 현재 통용되는 연탄은 이십이공탄이다. 

 

그러나 연탄은 타면서 일산화탄소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 당시 제일 무서운 것이 연탄가스였다. 연탄가스중독에는 동치미 국물이 좋다고 해서 우리 집에는 항상 동치미가 있었고 이웃에서 새벽에도 동치미를 얻으러 오기도 했다. 당시에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곧잘 신문 한 귀퉁이를 장식하곤 했다. 

 

필자는 장애인복지 관련 일을 하면서 많은 장애인을 만났는데 연탄으로 발생한 장애인이 더러 있었다. 연탄은 타면서 일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데 잠이 든 사이에 일산화탄소를 들이마셔 뇌병변장애인 등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화상이다. 연탄은 밤새도록 서서히 타므로 초저녁에 맨바닥에 누워서 등을 지지다가 잠이 들어 다리나 엉덩이에 화상을 입은 줄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다가 연탄보일러가 나왔다. 이제 연탄가스 중독에서 벗어난 것이다. 연탄은 인간을 위해 자신을 뜨겁게 불살랐으나 연탄의 삶은 단 하룻밤에 불과하다. 다음날이면 연탄은 한 줌의 싸늘한 재로 변하여 길바닥으로 버려졌으며, 추운 겨울이면 그 남은 재마저 인간을 위해 미끄럼 방지용으로 뿌려졌다. 

 

1990년대 초반까지 연탄아궁이나 연탄보일러를 둔 집이 많았지만, 그 뒤 기름보일러가 나오기 시작했고 도시가스가 공급되면서 연탄 연료는 급격히 사라졌다. 필자도 연탄보일러를 기름보일러로 바꾸었고 그리고 몇 년 후에는 도시가스로 바꾸었다. 

 

그러나 2019년 현재에도 여전히 연탄 연료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통계청(2015년도) 자료에 의하면 전국의 난방 시설별 가구는 19,111,731가구인데 이 가운데 연탄보일러는 160,045가구이고, 연탄아궁이는 13,987가구였다. 둘을 합친 연탄 연료를 사용하는 가구는 174,032가구다.

 

요즘은 연탄을 거의 안 쓰므로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연탄 한 장은 3.5kg 내외로 꽤 무거운 편이다. 연탄아궁이는 보통 두 개짜리인데 연탄 한 장은 12시간쯤 탄다. 12시간이 지나면 위의 불붙은 연탄은 꺼내놓고, 아래 연탄은 꺼내서 버리고 위의 연탄을 먼저 넣고 그 위에 새 연탄을 구멍을 맞추어 넣으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불이 꺼지므로 예전에는 이웃집의 불붙은 연탄을 몰래 가져오기도 해서 곧잘 다툼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시간을 놓쳐 연탄불이 꺼지기라도 하면 다시 불붙이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래서 나온 것이 번개탄이다.

 

연탄은 가을에 구입해서 창고에 쌓아 두고, 날마다 하루에 두 번 정도는 갈아야 하고, 그리고 다 탄 연탄재는 버려야 된다. 현재 전국이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만, 연탄재는 지정된 날에 내놓으면 언제든지 무상 수거를 해 간다. 그러나 연탄재가 깨어지기라도 할라치면 대략 난감이다. 

 

언젠가 필자가 만난 한 지체장애인은 절름발이라고 놀리고 달아나는 아이에게 이를 갈았지만, 놀리고 달아나는 데는 뛰어가서 잡을 수도 없으니 어찌할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벼르고 벼른 것이 연탄재를 들고 옥상에서 그 아이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그 아이가 나타나면 연탄재를 냅다 던졌다고 했다.  

 

그러나 연탄 연료를 사용하는 가구가 점점 줄어들면서 연탄 사기도 만만치 않다. 그러자 언제부터인가 겨울만 되면 연탄은행에서 자원봉사자들로 하여금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에 배달해 준다. 올해도 한 자원봉사자가 얼마 전에 연탄배달을 했다고 자랑처럼 얘기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지만. 

 

연탄은 곧 빈곤층이라는 이상한 공식으로 연탄을 배달하는 일은 자원봉사자들에게는 가장 폼 나고 효과적인 자원봉사다. 그래서 서울시장 등 유명 인사들도 얼굴이랑 옷에 일부러 검정을 묻혀가면서 일렬로 늘어서서 연탄을 한 장씩 가정까지 배달해 준다. 현재 연탄 한 장의 무게는 3.5kg 정도이고, 가격은 7~800원(개인 구매에는 배달료 포함) 정도이다.     

 

이 글을 쓰면서 여기저기 인터넷을 찾아보니 연탄은 시·도에서 지원을 하기 때문에 기름보일러를 일부러 연탄보일러로 바꿨는데 제대로 지원을 안 해준다는 얘기도 있었다.  

 

연탄은 가격에 비해 불땀이 새고 오래가고 여러 가지로 편리하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연탄불에 굽는 고깃집이 유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연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나이 많은 어르신이나 쪽방촌 1인 가구 또는 산꼭대기 가난한 판잣집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그 무거운 연탄을 하루에 두 번씩은 시간 맞춰 갈아야 하고, 요즘은 연탄재를 버리는 것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에게도 주거환경을 개선해서 기름보일러나 가스보일러를 놔 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비용은 3~4배가 더 필요하겠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가진 자들의 의무라고 한다. 물론 이건 필자 개인의 생각이고 취향일 수 있겠지만, 겨울철 연탄배달이 과연 가진 자들의 의무일까. 그래서 그들은 연탄배달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또 다른 사례를 생각해 보자.

 

필자는 아침 9시 반쯤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홈페이지를 훑어보고 집에서도 전화를 받으므로 출근 시간에 크게 구애를 받지는 않는다. 그런데 A 버스정류장에서는 가끔 버스 기사와 승객들이 옥신각신한다. 버스비를 안 내는 무임 승객들 때문에 버스 기사가 버스를 못 타게 하므로 실랑이가 벌어지는 것이다.

 

어떤 기사들은 버스를 세워놓고 ‘버스비 안 낸 사람은 내리라’고 소리를 지르고, 버스비를 낸 승객들이 “버스비 안 낸 사람들 때문에 차가 못 가니 빨리 내리세요!” 고함을 질러대니 몇몇 사람들이 슬그머니 내리기도 했다. 물론 개중에는 안 내리는 사람도 있었다.

 

필자가 그런 모습을 처음 접했을 때 그렇다고 버스비를 안 낸 승객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수도 없어서 한동안 궁금했었다. 출근 시간이 안 맞으면 못 만날 때도 있지만, 그런 일을 몇 번 보고 난 후에는 버스회사에 전화를 했다. 

 

“A 정류장에서 버스비를 안 내는 사람들이 있어서 버스 기사와 싸우던데 혹시 무슨 일인지 아세요?”

 

“아 그거, B 교회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돈 1,000원을 주는데 그 돈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버스비를 안 내기 때문입니다.”

 

아하! 그랬었구나.

 

그러고도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후에 우연히 그 모습을 다시 보게 되어 다시 한 번 버스 회사에 전화를 했다. 

 

“버스비를 안내는 무료 승객에 대해서 버스회사의 입장은 어떠한가요?”

 

“아, 그건 제가 대답할 내용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전화를 받은 사람은 윗분(?)을 바꿔 주는 것 같았다.

 

“어디십니까?” 

 

“에이블뉴스 기잔데요, 혹시라도 무임승차에 대한 회사의 방침이 따로 있으신가 해서요?” 

 

“그런 문제라면 답할 수 없으니, 정 대답이 필요하시다면 공문으로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일로 무슨 공문으로까지야.

 

이번에는 B 교회에 전화를 했다. 부목사라고 했는데 새로 와서 잘은 모른다고 했다.

 

“매주 금요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한 구제 차원에서 오시는 분마다 돈 1,000원을 드리는데 하루에 50명에서 많을 때는 80명 쯤 옵니다.” 

 

버스비 때문에 버스 기사들과 실랑이를 벌인다는 것은 자기도 알고 있으며,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C 교회에서도 1,000원을 주다가 민원 때문에 중단했답니다.” 

 

버스비가 현금은 1,300원이고 교통카드는 1,200원이다. B 교회에서 1,000원을 받으려고 버스비 왕복 2,400원을 쓸 수는 없지 않겠는가. 버스비를 안 낸 사람들은 서너 정류장 지나서 내리는데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인 것 같다. 65세 이상 어르신이라면 지하철은 무료니까.

 

이 글을 준비하면서 사진을 한 장 찍으려고 B 교회 부근 A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렸다. 사람들은 10시가 넘어서 B 교회를 나왔는데 2~30명은 지하철까지 걸어가는 모양이고, 일부 사람들만 A 버스정류장으로 왔다. 어떤 버스기사들은 무임 승객을 안 태워주었고, 몇몇 기사들은 태워주는 것 같았다. 그들도 이제 알았는지 한꺼번에 다같이 버스를 타지 않고 서너 명씩 탔는데 얼마 후에는 그들도 다 버스를 타고 떠났다. 그들이 버스비를 낼 리는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버스회사에서 무임승차를 해 줬다고 버스 기사에게 징계를 내리는 것은 아니겠지.

 

모든 운송 수단에는 요금이 정해져 있고, 해당 운송 수단을 이용하려면 무임승차가 법이나 규정상 허용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든지 운임을 지불하고 타야 한다. 장애인과 65세 노인 등은 지하철은 무료지만 버스비는 내야 한다. 

 

무임승차가 적발되면 기차는 10배, 지하철과 버스는 30배의 요금을 지불해야 되고, 「경범죄 처벌법」에서 무임승차는 물론이고 무임승차를 묵인하는 것도 교사·방조죄에 해당된다.

 

「경범죄처벌법」 

제3조(경범죄의 종류)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科料)의 형으로 처벌한다.

39. (무임승차 및 무전취식) 영업용 차 또는 배 등을 타거나 다른 사람이 파는 음식을 먹고 정당한 이유 없이 제 값을 치르지 아니한 사람.

제4조(교사·방조) 제3조의 죄를 짓도록 시키거나 도와준 사람은 죄를 지은 사람에 준하여 벌한다.

 

진정한 이웃 사랑 그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은 겉으로 행하는 행위가 아니라 평소 주변의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 그들이 원하는 것을 실질적으로 돕는 일이다.

 

어떤 단체에서는 장애인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면서 기념식도 없이 계좌이체를 해 주는 등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이웃을 돕는 곳도 있다.

 

불교에도 내가 베풀었다는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하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있고, 기독교에도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다. 

 

B 교회에서는 빈자들에게 천 원을 베풀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서 무임승차를 교사 및 방조하는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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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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