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편리한 가전제품 만들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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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9-03 08:44 조회77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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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편리한 가전제품 만들 수 없을까
음성안내 기능 탑재 등 편리해졌다지만 반쪽자리 접근성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8-08-31 17:44:36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그림의 떡’이라는 표현을 하곤 한다. 한자성어로는 ‘화중지병(畵中之餠)’이라 하는데 삼국지 노육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있다. 위나라 시대 명제 때 충성스러운 신하 중 노육이라는 이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명제가 노육에게 중서랑으로 등용할만한 이를 천거토록 하며 인재를 선발할 때, 명성만 보아서는 아니된다 이야기하며 명성이란 땅에 그려 놓은 떡과 같이 먹을 수 없는 것으로 별 소용이 없다 이야기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유독 이 ‘화중지병’이라는 말이 자주 생각난다. 뭔가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었다거나 신기한 제품이 출시되었다고 할 때 대부분 경우는 ‘그림의 떡’과 같다.
복지 정책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좀 괜찮은 지원제도가 시행된다고 하면 어김없이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만 대상이 된다거나 하여 전혀 그 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림의 떡’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고 ‘눈앞에 놓인 남의 떡’이나 ‘쇼윈도 안의 떡’ 정도가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은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도 먹을 수도 없는 것이지만 ‘눈앞에 있는 남의 떡’이나 ‘쇼윈도 안에 있는 떡’은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실체가 존재하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가질 수 없기에 더 그 아쉬움이 큰 존재라 할 수 있다.
과연 어느 것이 더 포기하기 쉬울까? 혹은 포기했을 때 느껴지는 안타까움이 더 클까? 그림 속에 있는 것 보다야 현실에 아주 가까이 있는 것이 포기하기도 어렵고 포기로 인해 느끼게 될 실망감도 훨씬 클 것이다.
이렇게 ‘그림의 떡’보다 더 큰 안타까움을 주는 분야가 바로 접근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요즘 가전제품들을 보면 이러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집에서 사용하던 에어컨이 10년 정도 지나고 나니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큰맘 먹고 새로운 제품을 구입했다. 유난히 더운 여름이었기에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새 에어컨을 산 것이었다. 기능도 좋고 디자인도 예쁘고 전기료도 적게 나오는데다 리모콘까지 무언가 고급스럽다.
게다가 세상이 좋아져서인지 에어컨을 조작할 때마다 무슨 기능을 실행하는지 설정 온도는 몇 도인지 하나하나 말로 읽어주기까지 했다. 이렇게 말도 해 주는 에어컨인데 눈 감고 쓰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에어컨은 말을 하는데 왜 리모컨은 말을 하지 못할까? 리모컨에 간단한 반도체와 내장스피커만 탑재해도 얼마든지 누르는 버튼 정도는 음성으로 안내해줄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제품 가격이 크게 오를 만큼의 추가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을 터인데 말이다.
중력센서를 설치해서인지 화면에 아무 글자도 표시되지 않다가도 리모컨을 들어 올리면 액정화면이 표기되는 기능까지 구현해 놓은 마당에 그게 그리 어려울 리가 없다. 이렇다 보니 이건 그림의 떡이 아니라 눈앞의 떡처럼 느껴진다.
몇 년 전까지 시각장애인들이 ‘말하는 밥솥’이라며 너나 할 것 없이 많이 구입하던 전기밥솥이 있다. 나 역시 그 제품을 사용했었다. 그런데 가전제품이라는게 다 수명이 있어 쓰던 밥솥이 더 이상 맛있는 밥을 만들어주지 못해서 새로운 제품을 사야 했다.
당연히 같은 회사의 신형 말하는 밥솥을 샀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젠 왠만하면 내가 밥을 짓지 않는다. 최신의 트렌드를 반영해서 인지, 아니면 엄청나게 감각적인 디자인을 추구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회사의 밥솥은 물리버튼을 없애고 터치방식의 입력방식을 선택했다.
여전히 말을 하지만 정작 말하는 밥솥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시각장애인은 이제 그 밥솥으로 혼자 밥을 짓는 것이 쉽지 않아져 버렸다. 이제 말 그대로 ‘눈앞의 떡’이 되어 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인공지능이다 뭐다 하면서 언젠가부터 각종 가전제품들이 음성안내 기능을 탑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제품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해 주니 시각장애인들도 다 편리하게 쓸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더 시각장애인과 같은 이들을 고려했더라면 아주 편하게 해당 제품들을 사용할 수 있었을 것 임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배려를 하지 않아 오히려 더 아쉬운 마음만 크게 느끼게 되었다.
‘그림의 떡’이라면 애초에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생각하고 포기라도 할 수 있었을 터인데, 접근성 보장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정작 약간의 고려를 하지 않아 사용이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주니 그 답답함만 더 커져간다.
보조공학이나 대체기술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던 시절에야 그래도 조금 이해할 수 있는 여지라도 있었지만 이미 각 가전사들이 접근성 문제에 대한 해결수단들을 정작 접근성이 절실히 필요한 대상이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탑재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이제는 이해의 여지가 없다.
최소한 관련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라면 장애인을 위한 접근성도 고려한 제품 개발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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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명제가 노육에게 중서랑으로 등용할만한 이를 천거토록 하며 인재를 선발할 때, 명성만 보아서는 아니된다 이야기하며 명성이란 땅에 그려 놓은 떡과 같이 먹을 수 없는 것으로 별 소용이 없다 이야기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유독 이 ‘화중지병’이라는 말이 자주 생각난다. 뭔가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었다거나 신기한 제품이 출시되었다고 할 때 대부분 경우는 ‘그림의 떡’과 같다.
복지 정책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좀 괜찮은 지원제도가 시행된다고 하면 어김없이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만 대상이 된다거나 하여 전혀 그 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림의 떡’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고 ‘눈앞에 놓인 남의 떡’이나 ‘쇼윈도 안의 떡’ 정도가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은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도 먹을 수도 없는 것이지만 ‘눈앞에 있는 남의 떡’이나 ‘쇼윈도 안에 있는 떡’은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실체가 존재하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가질 수 없기에 더 그 아쉬움이 큰 존재라 할 수 있다.
과연 어느 것이 더 포기하기 쉬울까? 혹은 포기했을 때 느껴지는 안타까움이 더 클까? 그림 속에 있는 것 보다야 현실에 아주 가까이 있는 것이 포기하기도 어렵고 포기로 인해 느끼게 될 실망감도 훨씬 클 것이다.
이렇게 ‘그림의 떡’보다 더 큰 안타까움을 주는 분야가 바로 접근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요즘 가전제품들을 보면 이러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집에서 사용하던 에어컨이 10년 정도 지나고 나니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큰맘 먹고 새로운 제품을 구입했다. 유난히 더운 여름이었기에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새 에어컨을 산 것이었다. 기능도 좋고 디자인도 예쁘고 전기료도 적게 나오는데다 리모콘까지 무언가 고급스럽다.
게다가 세상이 좋아져서인지 에어컨을 조작할 때마다 무슨 기능을 실행하는지 설정 온도는 몇 도인지 하나하나 말로 읽어주기까지 했다. 이렇게 말도 해 주는 에어컨인데 눈 감고 쓰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에어컨은 말을 하는데 왜 리모컨은 말을 하지 못할까? 리모컨에 간단한 반도체와 내장스피커만 탑재해도 얼마든지 누르는 버튼 정도는 음성으로 안내해줄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제품 가격이 크게 오를 만큼의 추가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을 터인데 말이다.
중력센서를 설치해서인지 화면에 아무 글자도 표시되지 않다가도 리모컨을 들어 올리면 액정화면이 표기되는 기능까지 구현해 놓은 마당에 그게 그리 어려울 리가 없다. 이렇다 보니 이건 그림의 떡이 아니라 눈앞의 떡처럼 느껴진다.
몇 년 전까지 시각장애인들이 ‘말하는 밥솥’이라며 너나 할 것 없이 많이 구입하던 전기밥솥이 있다. 나 역시 그 제품을 사용했었다. 그런데 가전제품이라는게 다 수명이 있어 쓰던 밥솥이 더 이상 맛있는 밥을 만들어주지 못해서 새로운 제품을 사야 했다.
당연히 같은 회사의 신형 말하는 밥솥을 샀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젠 왠만하면 내가 밥을 짓지 않는다. 최신의 트렌드를 반영해서 인지, 아니면 엄청나게 감각적인 디자인을 추구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회사의 밥솥은 물리버튼을 없애고 터치방식의 입력방식을 선택했다.
여전히 말을 하지만 정작 말하는 밥솥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시각장애인은 이제 그 밥솥으로 혼자 밥을 짓는 것이 쉽지 않아져 버렸다. 이제 말 그대로 ‘눈앞의 떡’이 되어 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인공지능이다 뭐다 하면서 언젠가부터 각종 가전제품들이 음성안내 기능을 탑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제품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해 주니 시각장애인들도 다 편리하게 쓸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더 시각장애인과 같은 이들을 고려했더라면 아주 편하게 해당 제품들을 사용할 수 있었을 것 임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배려를 하지 않아 오히려 더 아쉬운 마음만 크게 느끼게 되었다.
‘그림의 떡’이라면 애초에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생각하고 포기라도 할 수 있었을 터인데, 접근성 보장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정작 약간의 고려를 하지 않아 사용이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주니 그 답답함만 더 커져간다.
보조공학이나 대체기술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던 시절에야 그래도 조금 이해할 수 있는 여지라도 있었지만 이미 각 가전사들이 접근성 문제에 대한 해결수단들을 정작 접근성이 절실히 필요한 대상이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탑재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이제는 이해의 여지가 없다.
최소한 관련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라면 장애인을 위한 접근성도 고려한 제품 개발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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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조봉래 (jhobong@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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