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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고 볼링하고 안마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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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8-22 08:38 조회8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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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고 볼링하고 안마도 하면서

시각장애 4급 김귀옥 씨의 삶 - ③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8-08-21 14:45:44
집을 팔아서 갈 데가 없어졌다. 그는 시각장애 1급이고 기초생활수급자여서 임대아파트를 신청했다. 동사무소에서 임대아파트는 대기자가 많아서 기다려야 된다면서 장전동에 임대주택을 알선해 주었다.

“하루는 동사무소 직원이 나왔는데 이렇게 잘 보면 등급이 잘못된 것 같다면서 재판정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라는 대로 재판정을 했더니 4급이라고 합디다.”

안 해도 되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고 했다. 수급자의 경우 1급이면 장애인연금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 때는 몰랐기에 재판정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흰지팡이 없이 혼자서 다닐 정도는 된다.

전국체전 볼링대회 우승.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전국체전 볼링대회 우승. ⓒ이복남
2009년도에 부곡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을 때 한 친구가 “너는 (지)압도 좋고 하니 안마를 하면 잘 할 것 같다”며 안마를 해보라고 했다. 그제야 처음으로 귀가 솔깃했다.

부산시각장애인연합회에 문의를 하니 안마수련회에 들어가려면 점자를 알아야 된다고 했다. 점자도서관에 다니면서 점자를 배워 부산 안마수련원에 입학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사팔뜨기라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았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른 채 세월 따라 여기까지 흘러 왔다. 그런데 안마수련원에 입학하고 보니 모두가 시각장애인이었다. 이제 더 이상 그를 사팔뜨기라고 놀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안마·지압 외에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취미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연히 볼링을 시작했는데 제게 소질이 있는 겁니다.”

2014년 전국체전에서 시각장애인 볼링에 최수혜 씨와 2인조로 출전해 금메달을 땄다. 그 다음에는 은메달, 그 다음에는 금메달 그리고 2017년에는 혼자 출전해서 금메달을 땄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불렀지만 이상하게도 비장애인 세계에서는 별로 빛을 발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안마수련원에 입학하면서부터 여기저기 장애인노래자랑에서 입상을 했다.

한편 생리불순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우연히 모야모야병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을 해야 된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안마수련원에서 문학탐방을 해야 하는데 그가 해설자였던 것이다. 문학탐방을 마치고 나서야 모야모야병 수술을 했는데 현재는 완치상태란다.

안마수련원을 졸업하고 처음에는 안마봉사단에서 일을 하다가 00회사에 헬스키퍼로 취직했다. 취업을 해서 월급을 받게 되니 기초생활수급자는 탈락했다.

“수급자에서 탈락이 된 후 작은오빠하고 연락이 되어 같이 삽니다.”

그도 작은오빠도 미혼이다.

제주도 바닷가에서.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제주도 바닷가에서. ⓒ이복남
그동안 장애인노래자랑은 몇 군데 나가서 입상을 했다. 그러다가 ‘백년설가요제’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백년설(白年雪)은 1914년 성주 출신인데 본명은 이창민이고 백년설은 예명이다.

백년설은 1938년 ‘유랑극단’으로 데뷔하여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대지의 항구 고향설 등 주옥같은 노래를 불러 민족의 한을 달래 주었다. 특히 ‘나그네 설움’은 당시 민족의 아픔을 묘사한 노래로 나라 잃은 민족에게는 위안이었고 후일을 기약하는 의지의 발로이기도 했다.

‘나그네 설움’은 조경환 작사, 이재호 작곡, 백년설 노래로 태평레코드에서 1940년 2월에 음반이 발매되었는데 가사는 3절로 되어 있다.

1.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발길
지나온 자국마다 눈물 고였다
선창가 고동소리 옛 님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2. 타관 땅 밟아서 돈 지 십 년 넘어 반평생
사나이 가슴속엔 한이 서린다
황혼이 찾아들면 고향도 그리워져
눈물로 꿈을 불러 찾아도 보네

3. 낯익은 거리다마는 이국보다 차워라
가야 할 지평선엔 태양도 없어
새벽별 찬 서리가 뼛골에 스미는데
어데로 흘러가랴 흘러갈쏘냐

백년설가요제와 김귀옥 씨.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백년설가요제와 김귀옥 씨. ⓒ이복남
그런데 1940년대 태평양전쟁이 한창일 무렵 가수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백년설을 비롯하여 당시 유명했던 남인수 박향림 이난영 등은 일본이 요구하는 노래를 불러야 했고 박시춘 등은 친일가요를 작사 작곡해야 했다.

2003년 성주군에서는 제1회 백년설가요제를 개최하였는데 1940년대 백년설이 부른 ‘혈서지원’ 등 노래 몇 곡이 친일 부역 죄가 되어 ‘백년설가요제’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2018 백년설가요제’를 부산에서 개최하게 되었을까. 필자는 김귀옥 씨가 결선에 출전한다는 사실을 알고 참석했지만 고개가 갸우뚱했다. 1부 선발전이 끝나고 대회장이신 백낙천 원로가수에게 물었다. 백년설의 장남이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가 총칼을 들이대는 바람에 친일가요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피력하여 백년설가요제를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직도 남인수가요제나 박시춘가요제는 못 열리지만 이난영가요제는 목포에서 열리고 있다.

2부에서는 명국환 원로가수를 비롯하여 백년설기념사업회 회원 및 초대가수들이 노래를 했다. 그리고 3부에서 수상자를 발표했는데 ‘2018 백년설가요제’ 본선 진출자는 총 22명이었다. 이 가운데 신인가수 10명을 선발하였다. 장려상 인기상 등 10위부터 수상했는데 ‘무인도’를 부른 김귀옥 씨는 4위 동상이었다. 사회자가 말하기를 김귀옥 씨는 가창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했다.

백년설가요제에서 동상 수상.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백년설가요제에서 동상 수상. ⓒ이복남
‘무인도’는 이종택 작사, 이봉조 작곡으로 김추자가 노래했다.

‘파도여 슬퍼말아라
파도여 춤을추어라
끝없는 몸 부림에
파도여 파도여 서러워 마라

솟아라 태양아 어둠을 헤치고
찬란한 고독을 노래하라
빛나라 별들아 캄캄한 밤에도
영원한 침묵을 지켜다오
불어라 바람아
드높아라 파도여 파도여‘

‘무인도’는 곡도 맘에 들었지만 ‘파도여 슬퍼말아라, 파도여 춤을 추어라’는 노랫말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도 이제는 더 이상 울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그가 출전한 노래자랑은 대부분이 장애인노래대회였는데 이번 ‘백년설가요제’는 비장애인가요제에서 당당히 입상을 한 것이다. 물론 앞으로 가수의 길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아무에게도 말 못한 어린 시절의 꿈이 이제야 결실을 맺게 된 것이리라.

그래서 노래 부르고, 볼링도 하고, 직업으로 안마도 하면서 즐겁게 산단다.

“나름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인생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살기를 바란다고 했다. <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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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기자 (gktkr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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