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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갑이 되기보다 내 삶에 갑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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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5-16 08:18 조회9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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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갑이 되기보다 내 삶에 갑이 되자

장애인으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인간관계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7-05-15 16:14:42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많다.
성격도 생김새도 사고방식도 가치관도 모두 제각각이다 보니 세상살이에서 뜻대로 마음대로 안 되는 가장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혼밥족’이나 ‘각자도생’이라는 말은 철저한 개인주의와 남을 의식하지 않는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표방하는 듯 하지만 어쩌면 사람과의 관계를 거북하고 거추장스럽게 여기며 회피하고 싶은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무리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선택된 또 다른 삶의 방식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정안인 이었다면 글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을까?

필자처럼 중증 장애인의 경우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집안에서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식료품이며 생필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고작 아이의 등하원 조차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엄마 구실도 제대로 하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껄끄럽고 불쾌하고 별로 내키지 않더라도 도움을 받아야하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그 상황이나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딸아이가 4살일 때 단둘이 외출을 하기 위해 장애인 콜택시를 불렀는데 아이가 너무 어리고 나와 단둘이 다닌 경험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달려오는 택시에 부딪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콜택시가 도착하고 내가 차문 손잡이를 찾지 못하고 한참을 헤매고 있는데 기사님은 차안에 앉아서 “이쪽”, “저쪽”, “아니 좀 더 오른쪽, 왼쪽” 하며 말을 했고 그래도 손잡이를 찾지 못하고 힘들어하자 그제야 벨트를 풀고 밖으로 나오셨는데 그때 밖으로 나오며 뱉은 한마디,
“아이씨, 그것도 못 찾아요.”

부산의 장애인 콜택시의 경우는 등록된 중중 장애인만 이용 가능하도록 되어 있고 콜을 받음과 동시에 장애 유형과 도움 여부가 표시된다. 게다가 장애인 콜을 받은 기사님들에게는 장애인의 승하차시 도움을 준다는 전제하에 봉사료 명목으로 요금 외 1,5000원을 지자체에서 지급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뻔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차문을 찾지 못하고 헤맬 때부터 차안에 앉아 똥개 훈련시키듯 “이쪽, 저쪽”하며 고함치던 기사님에 대해 마음에 참을 인자를 새기며 추운 날씨에 떨고 있는 아이를 빨리 태우고 싶어서 더러운 차 외벽을 열심히 훑었던 것인데 기껏 차 밖으로 나온 기사님의 말에 참을 인자는 산산이 부서졌고 그 파편들을 기사님께 쏟아내기 시작했다. 결국 기사님은 “미안하다”며 사과했지만 그 말투나 억양에는 어떤 진정성도 보이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아, 내가 이런 모멸감을 받고도 이 차를 타야하나?’ 생각이 들었고 나는 그 기사님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 추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아이와 15분을 더 떨다 다음 배차된 콜택시를 탔었다.

선택지가 많지 않은 장애인의 삶에서 그리고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각자도생’이라는 말은 사치에 불과하다. 어쩌면 도움을 받기위해 분하고 억울하지만 그것을 참아가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장애인의 ‘각자도생’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지인 중에는 나처럼 전맹인 시각장애인이 있는데 그분은 처음 가보는 낯선 곳에서도 흰 지팡이 하나만으로 아무런 어려움 없이 보행하였고 그런 모습에 사람들은 “사실은 약간 보일 거야. 그러지 않고서는 저렇게 다닐 수 없어.”하고 의심스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분과 식사자리를 함께하게 되었을 때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정말 전맹 이신지, 그렇다면 어떻게 그렇게 흰 지팡이 보행을 잘하시는지 물어보았다.

내 질문에 그분은 유년시절 갑자기 시력을 잃었을 때 어머니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자신의 친구에게 자신의 하교길을 부탁하곤 하였는데 하루는 집에 돌아오면서 그 친구와 심하게 말다툼을 하였다고 한다. 다툼 끝에 화가 난 친구는 자신을 거리에 내버려두고 가버렸고 20분정도의 거리를 2시간동안 헤매다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분은 더 이상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단다. 그래서 흰 지팡이로 혼자 다니기 시작했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지팡이가 내는 소리와 손끝에 전해지는 진동만으로도 주위 상황을 알 수 있게 되었다며 “흰 지팡이가 사람보다 나아.”하며 “허허”웃으셨다.

그 말을 들으며 마음 한켠이 짠했다. 결과만 보면 그분에게 득이 되었지만 어린시절 믿었던 친구에 대한 배신감과 원망스러움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지 그리고 얼마나 노랜 시간들을 거리에서 헤매었을지 생각하니 그분의 웃음 속에 담겨진 애환에 마음이 안쓰럽기도 하였다.

사람은 싫든 좋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하는 사회적 동물이고 그 관계가 좋기만을 바라지만 항상 해피엔딩일수는 없다는 사실을 숱한 경험을 통해 알아간다.
지팡이가 어떻게 사람보다 더 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그렇게 말했던 것은 자신이 믿고 의지함에 있어서 상처주지 않고 변함없음이 사람보다 낫다는 의미일 것이다.

장애인들은 상처를 잘 받는다. 그것이 자격지심일수도 있고 그 사람의 기질일수도 있겠지만 장애인이 되어보지 못한 비장애인들이 무심히 던진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우리는 매우 감동하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한다. 이해하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단 한마디에 감동하면서도 무심히 던진 말 한마디가 귀찮은 날파리처럼 떨어지지 않고 마음을 헤집기도 한다.

SMS나 온라인을 통해 굳이 대면하지 않더라도 소통하고 공유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우리는 더욱 폭넓게 관계를 형성하지만 그 관계에 유대감이나 지속성은 더 얕아지고 있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이것 역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방어기재가 아닐까?

사람보다 흰 지팡이가 낫다고 말한 그분처럼 상처받고 힘들어지는 것이 싫어서 스마트폰이나 온라인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사람은 필요에 따라 쉽게 취하고 사라져버리는 인스턴트처럼 부수적인 존재가 되고 스마트폰과는 불리불안까지 느끼는 사람보다 가치 있는 것처럼 세상이 바뀌어 가는 것 같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시각장애모들의 자조모임의 한 지인이 자신이 학부모가 되어 겪은 일을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분은 어찌어찌하다 보니 반대표 엄마가 되었는데 당시 뚜렷하지는 않지만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는 상태였고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아이의 학교생활에 지장을 줄까봐 아무에게도 장애 사실을 말하지 않고 반대표 역할을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들이 자신을 험담하고 욕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급기야 반대표를 그만둘 학년말쯤에는 대인기피증까지 생겨 몇 년 동안은 은둔생활까지 했다고 한다. 그 지인이 그렇게까지 욕을 먹은 이유는 거만하고 잘난 척 한다는 게 이유였는데 시각장애가 있던 지인은 사람들을 뚜렷하게 분간할 수가 없어서 그냥 무심히 지나쳐가거나 상대가 인사하며 말을 걸어주면 그제야 아는 척을 하니 한두번도 아니고 매번 그러는 지인의 행동을 보면 욕먹기 딱인 셈이었다.

방법이야 어찌되었던 자신의 상황에서는 벅차고 힘든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위해 그렇게 행동한 지인의 입장도 이해되고 내막을 모르는 상태에서 지인의 행동에 기분이 상한 엄마들의 입장도 이해된다.
결국 양쪽 다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 셈이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어떤 상황에서 자의든 타의든 갑이나 을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사실 갑질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세상살이에 갑처럼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겠지만 갑이 있으면 누군가는 을이 될 수밖에 없다.

도움을 받고 배려 받는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보면 갑처럼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것 일뿐 우리의 마음은 을에 더 가깝다.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도움을 청할 때 애써 태연한 척, 당당한 척 말하지만 그 마음에는 ‘거절을 당하면 어쩌나?’,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전전긍긍 조심스럽게 말 한마디를 뗀다.

비장애인에 비해 사회나 타인의 도움을 더 많이 받고 살아야하는 우리는 그로인해 세상에 대한 감사함을 더 많이 느끼기도 하지만 또 그로인해 더 많이 상처받고 아파하기도 한다.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비장애인들과 장애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둘러싸여 있는 사회 속에서 장애인이 갑으로 존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갑이 되려하지 말고 내 삶에 갑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도움이나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고 무조건적이고 막무가내의 도움을 바라는 것은 상대나 사회로부터 갑이 되고자 발버둥치는 것과 같다. 타인의 도움과 배려가 우리에게는 필요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선택사항이므로 그들의 도움과 배려에 고맙게 여겨야한다.

그러나 장애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선입견으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의 존엄이나 가치를 무시하는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상대에게 갑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갑이 되어야한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특혜나 대우를 바라는 것은 사회에서 갑이 되고자 하는 것이지만 나에게 부여된 권리를 침해하는 상대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상대나 사회로부터 갑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가 부여한 나의 권리를 위해 갑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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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경미 (kkm75@kbuwe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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