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 위에 당당하게 일어서는 장애인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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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4-04 09:00 조회1,15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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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 위에 당당하게 일어서는 장애인 되자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7-04-03 16:48:14
비장애인들 속에서 나 홀로 장애인인 경우는 많다. 거리에서 혹은 지하철에서도 나 홀로 장애인이고, 아이 참관수업에 가도 나 홀로 장애인이고, 우리 동네에서도 나 홀로 장애인이고.... 우리 사회에 장애인이 많지 않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소통할만한 사람이 없는 나 홀로 장애인은 외롭다. 그나마 가족들과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 있고 낯선 곳에서는 활동바우처 선생님 덕분에 어색함을 감추고 조금이나마 당당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대학입학을 결심하고 개강일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 나는 29명의 비장애인들 속에서 나 홀로 장애인이었다. 활동바우처 선생님도 없고 누가 누구인지 볼 수도 없는 상황에 낯선 목소리들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분명 여기에 있는데 그들과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결계라도 쳐져있는 것처럼 다가갈 수도 다가오지도 않았다.
소외감 이질감 거리감 등을 느끼며 어색하고 뻘쭘했지만 나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불과 몇 년 전 내가 비장애인일 때 장애인을 보며 느꼈던 것들을 그들 역시 나를 보며 느끼고 있을 테니까… 그들을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내 이름이나 외모, 성격 따위는 궁금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내가 앞을 못 본다는 사실과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공부할 것인지 그것이 마냥 의아하고 신기했을 것이다.
내가 대학을 다니기로 결심했을 때 학업 외에 나름 목표한 것이 있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지 그리고 가능할지 알 수는 없지만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비장애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장애인식을 갖게 해주는 것이었다.
함께 생활하며 서서히 천천히 노력하자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시작했는데도 나 홀로라는 생각에 항상 마음은 무겁고 힘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항년기 장애학생들을 떠올렸다. 나는 비록 지금 장애인이지만 비장애인으로 대학생활도 해보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냉혹하고 치열하게 부딪혀 살아도 보았고 그 속에서 어느 정도 단련이 되었는데도 심리적으로 이렇게 힘든데 아이들은 어떻게 견딜까?
비장애아이들과 통합교육을 받는 어린 장애아들이 나 홀로 장애인으로 소외되고 위축되지는 않을지, 특수학교에서 같은 장애를 가진 학생들과 지낸 우리 아이들은 갑자기 나 홀로 장애인이 된 상황을 그리고 비장애인과의 관계를 잘 풀어갈 수 있을지…
비장애학생과 함께하는 통합교육 그리고 같은 장애학생들과 함께하는 특수교육 어떤 교육방식이 우리 아이들에게 더 바람직한 걸까? 스스로 자문자담 해보았지만 결론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다만 우리 학생들이 너무 힘들어하거나 위축되지 않고 잘 적응하기만을 바랄뿐이었다. 그리고 나도 말이다.
나는 장애에 대한 불편한 인식을 바꾸고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다. 강의실에 들어갈 때면 무조건 큰소리로 인사하고 학과수업에서도 항상 점자로 필기하며 토론이나 조별과제를 수행할 때도 가장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교수님이나 비장애 학생들도 장애가 아닌 나를 알아봐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 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학교측에서는 총장 및 학교관계자들과 장애학생들의 간담회가 마련되었는데 그 자리에는 1, 2학년에 재학 중인 장애학생 12명 그리고 장애학생을 돕는 근로장학생이 자리했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학생들이 사회복지과였으며 나를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항년기 학생들이었고 대부분이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었으며 3, 4급 정도의 장애학생들로 중증장애인은 나밖에 없었다. 인원이 작아서 그런지 모임은 특별한 형식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마지막에 학교생활의 어려움이나 건의사항을 말해보라는 학교관계자의 말에 나는 평소 생각했던 불편사항과 학교제도에 대해 건의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나 외에 항년기 학생들 중에는 자발적으로 나서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의 장애애정도가 심하지 않아서 별로 불편한게 없나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아이들도 나름 불편하고 힘든 것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얘기하지 못하고 주뼛거리며 괜한 말을 하는 것처럼 말소리에는 어떤 자신감도 당당함도 담겨있지 않았다.
모임 후 내 마음은 복잡했다. 장애학생들은 왜 자신 있게 자신의 입장을 말하지 못한 걸까? 단순히 아이들의 자질 문제였을까? 아니면 비장애인들 속에서는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묻혀 지내는 게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아무리 이야기해도 변하지 않더라며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걸까? 그도 아니면 도움 받고 배려 받는 삶에 익숙해져 삶 자체가 수동적으로 변한 걸까? 아니면 비장애인들과 다른 자신의 신체적 결함에 자존감을 잃은 걸까?
한동안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도 머리도 불편했다.
저성장시대에 세대갈등과 빈부의 양극화는 심해지고 극심한 취업난과 불안정한 고용 등으로 오늘날 사람들의 삶은 팍팍하고 미래는 암담하다. 이런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에도 벅차다.
그러다보니 4포세대(연애 포기, 결혼 포기, 출산 포기, 인간관계 포기)나 각자도생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한 삶을 택한 사람들을 비난하고 탓할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이 시대의 희생양일수도 있으니까…
이런 시대에 우리 장애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복지 정책은 국가의 재정이 여유로울 때 확대 발전하고 사람들의 관심이나 배려도 경제적 심리적으로 안정적일 때 활발해진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처럼 우리도 우리의 살길을 스스로 찾아야한다.
가만히 있으면 우리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고 알아서 챙겨 주겠지 하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우리의 인권은 무너질지도 모른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특별한 혜택과 권리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 권리가 우리에게도 있음을 그리고 권리위에 잠자는 자는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아이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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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소통할만한 사람이 없는 나 홀로 장애인은 외롭다. 그나마 가족들과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 있고 낯선 곳에서는 활동바우처 선생님 덕분에 어색함을 감추고 조금이나마 당당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대학입학을 결심하고 개강일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 나는 29명의 비장애인들 속에서 나 홀로 장애인이었다. 활동바우처 선생님도 없고 누가 누구인지 볼 수도 없는 상황에 낯선 목소리들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분명 여기에 있는데 그들과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결계라도 쳐져있는 것처럼 다가갈 수도 다가오지도 않았다.
소외감 이질감 거리감 등을 느끼며 어색하고 뻘쭘했지만 나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불과 몇 년 전 내가 비장애인일 때 장애인을 보며 느꼈던 것들을 그들 역시 나를 보며 느끼고 있을 테니까… 그들을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내 이름이나 외모, 성격 따위는 궁금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내가 앞을 못 본다는 사실과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공부할 것인지 그것이 마냥 의아하고 신기했을 것이다.
내가 대학을 다니기로 결심했을 때 학업 외에 나름 목표한 것이 있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지 그리고 가능할지 알 수는 없지만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비장애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장애인식을 갖게 해주는 것이었다.
함께 생활하며 서서히 천천히 노력하자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시작했는데도 나 홀로라는 생각에 항상 마음은 무겁고 힘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항년기 장애학생들을 떠올렸다. 나는 비록 지금 장애인이지만 비장애인으로 대학생활도 해보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냉혹하고 치열하게 부딪혀 살아도 보았고 그 속에서 어느 정도 단련이 되었는데도 심리적으로 이렇게 힘든데 아이들은 어떻게 견딜까?
비장애아이들과 통합교육을 받는 어린 장애아들이 나 홀로 장애인으로 소외되고 위축되지는 않을지, 특수학교에서 같은 장애를 가진 학생들과 지낸 우리 아이들은 갑자기 나 홀로 장애인이 된 상황을 그리고 비장애인과의 관계를 잘 풀어갈 수 있을지…
비장애학생과 함께하는 통합교육 그리고 같은 장애학생들과 함께하는 특수교육 어떤 교육방식이 우리 아이들에게 더 바람직한 걸까? 스스로 자문자담 해보았지만 결론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다만 우리 학생들이 너무 힘들어하거나 위축되지 않고 잘 적응하기만을 바랄뿐이었다. 그리고 나도 말이다.
나는 장애에 대한 불편한 인식을 바꾸고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다. 강의실에 들어갈 때면 무조건 큰소리로 인사하고 학과수업에서도 항상 점자로 필기하며 토론이나 조별과제를 수행할 때도 가장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교수님이나 비장애 학생들도 장애가 아닌 나를 알아봐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 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학교측에서는 총장 및 학교관계자들과 장애학생들의 간담회가 마련되었는데 그 자리에는 1, 2학년에 재학 중인 장애학생 12명 그리고 장애학생을 돕는 근로장학생이 자리했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학생들이 사회복지과였으며 나를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항년기 학생들이었고 대부분이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었으며 3, 4급 정도의 장애학생들로 중증장애인은 나밖에 없었다. 인원이 작아서 그런지 모임은 특별한 형식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마지막에 학교생활의 어려움이나 건의사항을 말해보라는 학교관계자의 말에 나는 평소 생각했던 불편사항과 학교제도에 대해 건의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나 외에 항년기 학생들 중에는 자발적으로 나서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의 장애애정도가 심하지 않아서 별로 불편한게 없나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아이들도 나름 불편하고 힘든 것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얘기하지 못하고 주뼛거리며 괜한 말을 하는 것처럼 말소리에는 어떤 자신감도 당당함도 담겨있지 않았다.
모임 후 내 마음은 복잡했다. 장애학생들은 왜 자신 있게 자신의 입장을 말하지 못한 걸까? 단순히 아이들의 자질 문제였을까? 아니면 비장애인들 속에서는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묻혀 지내는 게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아무리 이야기해도 변하지 않더라며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걸까? 그도 아니면 도움 받고 배려 받는 삶에 익숙해져 삶 자체가 수동적으로 변한 걸까? 아니면 비장애인들과 다른 자신의 신체적 결함에 자존감을 잃은 걸까?
한동안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도 머리도 불편했다.
저성장시대에 세대갈등과 빈부의 양극화는 심해지고 극심한 취업난과 불안정한 고용 등으로 오늘날 사람들의 삶은 팍팍하고 미래는 암담하다. 이런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에도 벅차다.
그러다보니 4포세대(연애 포기, 결혼 포기, 출산 포기, 인간관계 포기)나 각자도생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한 삶을 택한 사람들을 비난하고 탓할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이 시대의 희생양일수도 있으니까…
이런 시대에 우리 장애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복지 정책은 국가의 재정이 여유로울 때 확대 발전하고 사람들의 관심이나 배려도 경제적 심리적으로 안정적일 때 활발해진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처럼 우리도 우리의 살길을 스스로 찾아야한다.
가만히 있으면 우리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고 알아서 챙겨 주겠지 하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우리의 인권은 무너질지도 모른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특별한 혜택과 권리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 권리가 우리에게도 있음을 그리고 권리위에 잠자는 자는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아이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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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경미 (kkm75@kbuwe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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